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동기 시대 (문단 편집) == 청동기 시대의 특징 == 교과서 수준에서 나오는 청동기 시대에 일어난 변화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청동[[거울]][* 대표적인 유물로 [[다뉴세문경|정문경]]이 있다.], 청동[[팔주령|방울]][* 대표적인 유물로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이 있다.], 향로[* [[http://rokmc596.net/technote/read.cgi?board=Chinese_day&y_number=940|구정의 무게를 묻는다]]는 [[춘추시대]]의 에피소드에 나온 [[구정]]이 바로 청동으로 만든 [[솥]]인데, 쉽게 말해 향 같은 거 담고 불 붙여서 연기 피우는 물건이다. [[은나라|은]], [[상나라|상]]에서부터 하늘에 직접 제사 지낼 수 있는 신분으로서의 왕권의 상징하는 신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를 통해 당시 청동기물의 하이테크적 위상과 [[제정일치]] 정치 체제의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도 일상용품은 동물의 뼈, 가죽으로 만들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희소하고 강도도 부실한 청동으로 일상 생활 용품을 만들 여건도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의 청동 거울은 제사 의식을 위한 도구였지 일상 용품이 아니었다. * 지역 간의 장거리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구리는 그 자체로도 귀하며 특히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석과 혼합해야 하는데, 주석의 산지는 매우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 가장 부유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청동기를 만들기 위해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브리튼]] 제도까지 가서 주석을 수입해왔다. * 한반도에서는 무늬가 없는 [[민무늬 토기]]가 널리 사용 되었다. * 한국의 경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 [[고인돌]]이 생겨났다. 고인돌 자체는 한반도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유물이지만, 세계적으로 거석 문화가 이 시기에 발생했던 것은 맞다. 예를 들면 [[스톤헨지]]라거나. 거석 문화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만큼 큰 돌을 '''아무런 실용적인 이유도 없이 어떤 사람의 의도에 의해''' 옮겨야 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계급 사회가 발생했다는 증거로 본다. * 청동기는 귀하고 물러서 농기구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청동제 농기구가 전혀 발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가 많지도 않았던 데다 청동시 시대 농기구는 간석기인 [[반달돌칼]]이었고 금속제 농기구의 도입은 [[철기시대]]에 이르러 보편화 되었다. 단, 한반도에서는 청동 농기구가 발견되지 않지만 중국 남부와 베트남 지역에서는 청동 농기구로 농사를 지었다. 한반도 지역보다 구리와 주석의 희소성이 적어 청동으로 농사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 계급이 발생하고 전쟁이 자주 발발함에 따라 남성 지배층 위주의 사회 양상이 생겨났다. 이 시대의 무덤은 매장자의 지위가 높을 경우 화려하고 많은 수의 부장품이 함께 발견되는 반면 피지배층의 무덤은 그렇지 못하며, 유골들 간의 체격 및 영양 상태 차이도 커졌다. 고위 지배층이나 전투에 주로 참여하는 젊은 남성 위주로 영양가 높은 식사를 섭취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밑에서도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딱히 청동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한반도는 청동의 재료가 되는 광물이 적고 청동 거래를 위한 국제 교역망과도 교류가 많지 않은 편이라서 실제로 출토되는 청동기는 극히 적다.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로 표현되는 선사 시대 구분법은 관습적 구분법으로, 실제 청동기나 철기를 썼나로 구분하기 보다는 이런 사회적 변화가 있다면 청동기 시대라고 부르는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청동기 없어도 계급 사회가 발생한 거 같은 정황이 보이면 청동기 시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